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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전 세계를 강타하고 한국의 하루키 열풍을 몰고 왔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역작 노르웨이의 숲. 우리나라에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급변했던 1960년대 일본 대학을 중심으로 청춘들의 사랑과 상실, 그리고 성장에 대한 청춘 소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하루키는 이 책을 통해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우뚝 서게 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49년 일본의 고베시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러시아 문학과 미국 문학을 탐독하면서 문학적 소양을 쌓았습니다. 1968년 와세다대학 문학부에 입학했으나 당시 일본 열도를 휩쓴 학생운동으로 인해 학교가 폐쇄되자 이후 소설과 영화, 음악에 빠져 지냈습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의 취향을 살려 1979년부터 재즈 바를 운영했습니다. 어느 휴일 오후 하루키는 야구장에서 파란 하늘을 보며 문득 소설이 쓰고 싶어졌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소설 쓰기에 돌입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글쓰기를 시작한 그는 첫 출품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양을 쫓는 모험>을 통해 로마 신인상을 수상하며 중견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습니다. 재즈 바를 운영했던 자신의 경험 때문인지 초창기 그의 책에서는 늘 음악과 맥주, 레코드판에 대한 묘사가 공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87년 전 세계에 하루키 열풍을 불러일으킨 작품을 발표하니 바로 <노르웨이의 숲>입니다. 이처럼 하루키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불필요한 성적 묘사가 많이 들어있다거나 이야기에 부족한 개연성을 갑자기 판타지로 틀어막는다는 비판도 동시에 존재하는 작가입니다.
첫사랑, 만남
여기 37살의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흘러나오는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들으며 18년 전 자신이 사랑했던 한 여자를 떠올립니다.
그녀는 자신을 언제까지나 기억해 달라고 얘기했고, 주인공인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그녀와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주인공인 나의 이름은 와타나베. 일본 고베시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했던 나는 1968년 봄 18살의 나이에 도쿄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렇게 나의 대학 생활은 시작되었고, 신입생으로서의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어느 봄날 나는 도쿄 어느 전철역에서 우연히 나오코를 만났습니다. 나오코는 고등학교 때 절친한 친구였던 기즈키의 여자친구였습니다. 기즈키는 고등학교 시절 나의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그와 나는 늘 붙어 다녔고, 나오코는 기즈키의 여자친구였으니 우리 셋은 데이트를 거의 함께 즐겼습니다. 어느 날 기즈키는 나에게 당구 치러 가자고 얘기했습니다.
평소와 달리 아주 진지하게 당구를 친 기즈키는 오늘은 왠지 지기 싫은 날이라며 첫판을 진 뒤 다음 세 판을 내리 이겼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자신의 집 차고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되었습니다. 기즈키의 허망한 죽음을 뒤로하고 나오코와 나는 각자의 대학에 진학했고, 서로를 잠시 잊은 채 대학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오늘 이 전철 안에서 나오코를 다시 만났고 이후 우리는 여름방학 동안 자주 만나며 조금씩 친해졌습니다.
나오코는 여전히 기즈키를 그리워하고 있었지만 기즈키에 대해 오래 얘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로 도쿄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습니다. 주로 나오코 뒤를 내가 따라가는 형태였는데, 방학이 끝나자 나오코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곁에 붙어 나란히 걷게 되었습니다. 나오코는 나에게 여자를 사귀어본 적이 있는지 물었고 나는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사귀는 듯 아닌 듯 그렇게 우리 둘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습니다. 나는 나오코가 좋았지만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고, 기즈키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는 나오코에게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낮에 나오코를 만나 함께 걸었고, 밤에는 기숙사 선배인 나가사와와 함께 클럽을 찾아다녔습니다. 나가사와는 도쿄대학 법학부에 재학 중인 기숙사 2년 선배였는데 집안도 좋고 얼굴도 잘생겨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있던 나에게 다가와 먼저 관심을 보였고, 내가 이 책을 세 번째 읽고 있다고 말하니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남자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겠다고 말하면서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후 우리는 책과 음악을 이야기했고, 밤에는 클럽을 전전하며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낮에 나오코를 만나고 밤에 클럽을 다니는 시간이 계속될 무렵 나는 나오코의 20살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거짓말처럼 그녀가 사라졌습니다. 나는 나오코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연극사 강의를 들으며 미도리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긴 생머리인 나오코에 비해 미도리는 짧은 숏컷 스타일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통 튀는 여자였습니다. 미도리의 아버지의 서점에서 점심을 먹고 옥상에 올라가 불이 난 건너편 건물을 바라보았습니다. 미도리는 애인이 있다고 말했고, 나도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애인이 있지만 서로에게 강한 호기심과 호감을 갖고 있으니 당장 필요할 때 술친구 정도로 만남을 시작하는 데 서로 동의했습니다.
그 사이 사라졌던 나오코로부터 편지 한 통이 왔습니다. 나오코는 자신이 지금 요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과 자신의 생일날 있었던 우리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마음 쓰지 말라고 적었습니다. 우리는 몇 번의 편지를 주고받았고, 면회가 가능한 상태인 것을 확인한 나는 나오코가 있는 요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나오코의 옆에는 레이코라는 이름의 룸메이트가 있었습니다. 레이코 씨는 30대 중반의 여자였고 음악에 소질이 있었던 기타리스트였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은 요양원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환자라기보다는 병원에서 의사들과 환자들에게 기타를 가르치는 스텝 정도로 보였습니다. 나오코는 자신의 불완전함과 기즈키와 자신의 불완전한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은 기지키를 사랑했고, 기즈키도 자신을 사랑했지만 둘의 사랑은 불완전했다고 했습니다. 나는 요양원에서 2박 3일을 보낸 뒤 다시 도쿄로 돌아왔습니다.
두 여자 : 나오코와 미도리
언제나처럼 미도리는 나를 반겨줬고, 어느 날 함께 갈 곳이 있다며 기숙사에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간 곳은 미도리의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작은 병실이었습니다. 미도리는 그동안 어머니가 죽은 뒤 자신의 아버지가 우루과이로 떠났다고 말했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사실 병으로 입원해 있었던 것입니다. 미도리의 아버지는 나를 보며 혼잣말로 잘 부탁한다고 말했고, 우리가 병문안 간 다음 주에 돌아가셨습니다. 사람의 죽음이란 작고 기묘한 추억들을 남기고 가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나가사와 선배는 자신이 원하던 외무성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스페인어를 배우는 나가사와 선배는 사람들이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누구나 처해진 상황에서 노력한다고 했지만, 선배는 그것은 노력이 아니라 노동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미도리의 아버지는 텔레비전으로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하는 건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고, 노력과 노동의 차이가 있는지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도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내가 오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고, 우리는 술을 마신 뒤 영화를 봤습니다. 미도리와 그녀의 서점으로 갔고, 침대에 누워 함께 있어주며 위로해 주었습니다.
미도리와 이렇게 지내면서도 나는 나오코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나는 나오코에게 요양원에서 퇴원하면 같이 살지 않겠느냐고 편지를 썼고, 나오코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답장을 했습니다. 그것은 혼자만의 착각이었습니다. 나오코의 답장은 점점 오지 않았고, 레이코 씨는 편지를 통해 나오코의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1970년 해가 찾아왔습니다. 나는 기숙사를 나와 자취방을 얻었습니다. 이사 후 3주가 지난 뒤에서야 미도리에게 연락하지 않고 집을 옮겼다는 것을 알았고, 화가 난 미도리는 두 달 동안 같은 강의실에서도 나를 아는 척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봄 나는 매우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나오코에겐 일주일에 한 번씩, 레이코 씨에게도 그리고 미도리에게도 몇 번인가 편지를 썼습니다. 마치 편지를 씀으로써 산산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생활을 간신히 지탱해 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고 어느 날 강의가 끝난 뒤 미도리는 갑자기 내 옆에 앉아 턱을 괴고 불쑥 말했습니다. “배고프다 뭐 먹으러 가자” 미도리와 나는 비 오는 날 백화점 옥상에 올라갔고, 미도리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이유를 물었고, 미도리는 나에게 “마르크스를 이해하고 가정법을 설명할 수 있으면 뭐 하냐고 이렇게 바보인데”라고 말했습니다.
나도 미도리가 좋았습니다. 여전히 나오코를 좋아하고 있고, 그것 때문에 표현할 수 없는 부끄러움도 느끼지만 미도리가 점점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레이코 씨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는 나오코를 사랑해 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도리와 나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 결정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자꾸자꾸 저 끝까지 떠밀려 가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내가 나오코에 대해 느끼는 것은 무섭도록 조용하고 부드럽고 맑은 애정이지만 미도리에 대해선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서서 걷고 호흡하고 고동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혼란스럽습니다.”
레이코 씨에게서 답장이 왔습니다.
“미도리라는 사람은 꽤 매력적인 여성인 것 같아. 그녀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편지만 읽어도 잘 알 수 있겠어. 동시에 나오코에게도 마음이 끌린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그런 건 이 넓은 세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야. 날씨 좋은 날 노를 저어 호수로 나아가 하늘도 푸르고 호수도 아름답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거든. 고뇌하지 마. 가만 내버려둬도 흘러가야 할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은 상처받을 땐 어쩔 수 없이 상처받기 마련이야. 인생이란 그런 거야. 와타나베도 인생의 그런 모습을 슬슬 배울 때가 되었어.”
미도리에게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갑작스럽게 나오코는 요양원에서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쓸쓸한 장례식은 그녀의 죽음처럼 허무하게 끝이 났고, 나는 한 달간 배낭을 메고 무작정 돌아다녔습니다. 얼굴이 반쪽이 되었습니다. 여행을 마쳤으나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요양원을 완전히 나온 레이코 씨는 나에게 찾아와 나오코가 죽기 전날 밤 요양원에 같이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레이코 씨는 미도리라는 여자와는 진전이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뭔가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면서 너무 쓸쓸했던 나오코의 장례식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레이코 씨는 기타를 맨 채 정원의 석등을 보고 팻 마루에 앉았습니다. 나에게 와인 잔 하나를 부탁했고, 그 잔에 와인을 가득 채워 석등 위에 올려놨습니다. “지금부터 둘이서 나오코의 장례식을 다시 치르는 거야.” 레이코 씨는 나오코가 좋아했던 <노르웨이의 숲>을 시작으로 내리 50곡을 연주했습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나는 성냥개비 하나를 석등 옆에 꽂았습니다.
“와타나베 이젠 쓸쓸한 장례식 같은 건 깨끗이 잊어버려.” 레이코 씨가 떠난 후 나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너와 이야기하고 싶다.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 이 세상에서 너 말고 내가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걸 너와 둘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미도리는 한참 동안 듣고만 있었습니다. 마치 온 세계의 가랑비가 온 세계의 잔디밭에 내리고 있는 듯한 침묵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윽고 미도리가 입을 열었습니다. “자기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어느 곳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소설은 마무리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의 특징은 현실적이고 때로는 몽환적입니다. 그림으로 보여준 적 없지만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내 옆에서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자세한 인물 묘사를 보여줍니다. 또한 풀, 꽃, 바람, 내음까지 주인공과 함께 동시대 동일한 장소에 있는 것 같은 배경 묘사도 대단합니다. 가끔은 소설을 읽는 건지 누군가의 일기를 보는 건지 싶습니다.